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삶이 뜻대로 안 될때 (카일 아이들먼)" 책 중의 내용입니다.
카일 아이들먼이 한 목회 세미나에서 애덤이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있었던 재소자였습니다. 그는 교도소에서
삶이 지치고 힘이 들었을때 예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출소 후에 자신이 살고 있는 작은 동네의 한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전과자라는 것이 알려 지자 많은 교인들이 그를 불편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오랫동안 다니던 어떤 가족들은 애덤을 내보내지 않으면 교회를 떠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목사님은 이들에게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가족들은 교회를 떠났고, 또 다른 가족들을 떠날 기세였습니다.
애덤은 자신이 그동안 너무 엉망으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회로부터 단절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일 날 설교 후에 목사님은 애덤에게 앞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아무도 자기 옆에 앉지도 않고 홀로 외롭게 예배를 드리고 있던 애덤은 어떤 일이 벌어 질 줄 았습니다. 그는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는 목사가 자신이 전과 사실을 온 교인들에게 알리고 교회에서 내보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앞으로 조심스럽게 나왔습니다. 이제 곧 일어 날 일들을 생각하며 수치심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일부 교인들은 생각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조용히 내보내기를 원했는데 이렇게까지 창피를 주면서 까지 내어 보낼 필요가 없는데요.
애덤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목사는 자신이 내린 결정을 교인들에게 밝히겠다고 했습니다.
애덤은 교도소에서 출소 한 이 후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성도님들 애덤을 이 자리에 나오게 한 것은 애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함입니다. 교회 시설을 맡아 주시겠습니까? 목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전 교인들 앞에서 교회 열쇠 더미를 그에게 맡겼습니다.
그 때서야 교인들은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외로움에서 벗어 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애덤은 지금까지 어떤 용도의 열쇠를 가져 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가 강렬한 사랑을 받고 있으며 용납받았다고 느꼈습니다.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후 애덤은 하나님과 교회와 사람들을 잘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목회자 세미나에서 주강사로 활약했습니다.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세리는
세금을 징수하는 관리
죄인 취급
사람들로부터 소외
그 당시 세리들은 로마 정부와 협잡하여 자기 동족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갈취하는 세금 청부업자들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착취자, 반역자로 취급당하였습니다
마태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에
다른 세리들을 초청하고, 12 사도 중 한 명이 되었으며, 마태복음의 저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신학학자가 이렇게 표현 장면이 이해가 됩니다.
마태는 바다 근처의 탁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돈 뭉치, 회계 장부, 생선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으나 그와 함께 마음을 나눌만한 친구들은 없는 듯 보였다.
삶이 외로운가요? 매말라 있는가요?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영적 성장과 영적 기쁨은 예수님과 좋은 친구 관계를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 가는 것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요한복음15:13~14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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