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산상수훈- 소금과 빛의 역할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지난 주에는 산상수훈 중 8복에 대하여 설교를 하였습니다. 오늘은 산상수훈 중 소금과 빛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합니다.
[소금]
고대 시대부터 소금은 주로 방부제로 음식의 부패를 막는 데 사용해 왔습니다. 고대에는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에 많은 음식물을 보존하기 위하여 소금을 사용했습니다. 또 소금은 맛을 돋구는데 사용해 왔습니다. 하얀 황금이라고 불리웠습니다.
Salary (봉급) 은 라틴어 Salarium (소금 돈)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소금은 고대에 사람들에게 월급으로 주었다고 합니다.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없으면 세상은 더 부패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없으면 세상은 더 부패해진다고 생각하면 더 큰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게 되죠.
기도교인들은 사회에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아무리 부자이거나 권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부패하면 영향력이 없습니다. 부패한 대통령, 부패한 회장.
소금이 그 맛을 잃게 된다면 “존재의 이유”가 없습니다. 쓸모가 없어서 버려지게 됩니다.
또 소금이 맛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다른 것과 혼합되어 그 순도를 잃어 버린다면, 예를 들면 모래와 섞이게 된다면 더 이상 방부제로 사용하거나 음식의 맛을 내는 데 사용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소금의 목적은 부패를 막는 데 사용되기 때문에 소금 그 자체가 부패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세상이 왜 이렇게 악해 가지라고 한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수록, 세상의 부패가 커질수록 , 예수님의 제자의 필요성이 커지는 것입니다. 기성세대가 부패하였다면 부패하지 않은 우리 청년들, 예수님을 잘 믿는 청년들이 필요합니다.
시편 110:3 거룩하고 위엄있게 단장한 새벽 이슬처럼 신선한 청년들이 주님께 나올 것입니다.
길선주(1869~1935)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부친의 축첩과 모친의 정신적 고통, 사업의 실패, 시대적 혼란 등을 경험하면 삶의 회의를 가졌던 길선주는 19살 때부터는 염세적 성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는 종교적 수행을 하게 됩니다. 여러 종교를 거치면서, 많은 종교와 도의 성취를 위한 그의 노력은 항상 허무한 과정의 연속이었다.
친구의 도움으로 천로역정, 기독교 서적을 읽게 됩니다. 마침내 예수님을 믿고 1897년, 29세에 세례를 받습니다.
1907년 평양 대 부흥회를 주도하게 됩니다. ““맛을 잃은 말라빠진 사람들아”라고 외치며 합당한 신자의 삶을 살지 못했음을 책망하고 설교했을 때 또 다시 회개의 기도가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회중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을 때 이 죄의 고백은 1907년 성령의 역사를 불러일으키는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친구가 죽어 가면서 돈을 맡겼는데 이 돈을 떼어 먹었습니다. 제가 그 돈을 죽은 친구 아내에게 돌려 드리겠습니다. 라며 회개를 하였습니다.
새벽기도, 통성 기도는 길선주 목사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3.1운동 당시에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합니다. 기독교인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소금의 역할 하였습니다.
[빛]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입니다. 여기서 빛이라는 것은 “착한 행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착한 행실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이것을 통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는 두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산 위의 동네의 불 빛과 등불의 빛입니다.
산 위의 등불은 한 밤 중에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등불은 주변을 밝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적인 명성보다 천국의 규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18세기 영국은 국가 수입의 1/3 이상을 노예 무역을 하여 국가 이익을 창출하였고, 150년동안 약200만명을이 넘는 노예를 수송하였습니다. 이러한 노예 무역은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왕족, 귀족, 상인, 식민지 기득권 세력등 모든 계층으로부터 지지를 받았습니다. 1780년 21살 때 예수님을 믿게 된 윌리암 윌버포스는 기독교적인 길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이전의 습관들을 모두 버렸습니다.
노예무역 페지와 노예 해방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살아 갑니다. 노예 무역을 폐지하는 것은 영국 전체를 상대로 싸우는 것 과 같았습니다. 고위직에 올라 갈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세상의 명예보다는 소명을 가지고 싸움니다. 두 번 암살의 위기 있었지만
윌버포스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대영 제국의 악법과 맞서 싸웠습니다.
그는 삶 속에서 능력과 재능 그리고 웅변의 능력을 사용하였습니다.
결국 50년 후인 1833년에 노예 무역이 폐지를 듣고, 생을 마감합니다.
우리 나라의 많은 정치인들은 윌리암 윌버포스를 정치의 롤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빛의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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