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2:11
제목: 예수님과 다윗
이야기의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하여 지도를 보면서 정황을 알아 보겠습니다.
다윗 시대 때에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는 이러합니다. 블레셋, 아말렉
다윗은 사울 왕으로부터 늘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블레셋으로 망명을 갑니다. 블레셋 왕은 다윗에게 시글락이라는 마을을 줍니다.
그런데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전투가 벌어 지는데, 블레셋 왕이 다윗과 그 용사들을 싸움터에 데리고 갑니다. 다윗은 블레셋과 연합 작전으로 이스라엘과 싸워야 합니다. 다윗은 곤란한 상황 가운데 있게 됩니다. 싸우면 자기 민족을 죽이는 것이고, 안 싸우겠다고 하면 블레셋에게 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아마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 위급한 상황에서 도와 달라고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 졌습니다. 블레셋의 군사 참모들이 다윗을 데리고 가지 말자고 합니다. 왜냐면 다윗이 돌변하고 우릴 배반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하며 다윗을 전쟁터에 합류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다윗과 600 명의 부하는 시글락으로 돌아 갑니다. 다윗과 600명의 부하들이 시글락에 도착했을 때는 아말렉이 쳐들어 와서 남아있는 여자와 아이들을 노예로 끌고 갔고 물건들도 모두 가져가 버렸습니다 시글락은 완전히 초토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다윗과 그 부하들은 목놓아 울었습니다. 얼마나 울었으면 모두들 더 이상 울 힘이 없을 정도로 울어 지쳐 버렸습니다.
그런데 부하들은 이 모든 책임이 다윗에 있다고 라면서 “다윗을 돌로 쳐 죽이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다윗의 어려운 상황을 읽어 나갈 때, 우리는 다윗이 어떻게 행동해 주기를 기대합니까?
우리에게 큰 시험이 닥쳐 올 때 두 가지로 반응을 합니다.
극복하는 것/좌절하는 것
최선으로 반응/최악으로 반응
원래 이 부하들은 광야에서 어렵게 생활하면서 사랑과 전우애, 우정의 공동체였는데 그들에게 맞은 큰 재앙은 부하들의 마음을 최악으로 반응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최선으로 반응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였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이 있을 때 해야 할 일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다윗은 기도하고 그의 목사 격인 아비아달을 찾아가서 상담을 했습니다.
“그들을 쫓아 가라”
다윗의 600명의 군사는 아말렉 약탈자를 추적하기에는 너무 열악한 상태였습니다.
600명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지만 다윗은 600명을 분발하게 하여 남쪽으로 진군을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힘겹게 브솔 시내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이르자 3분의 1에 해당하는 200명의 부하는 더 이상은 갈 수 없을 만큼 완전히 탈진해 있었습니다. “우리는 더 못 갑니다. 몸도 마음도 완전히 힘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브솔 시내에 남았습니다. 400명은 시내를 건너서 황량한 사막 지역으로 들어 갔습니다. 아말렉의 흔적을 찾을 수 는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초조해지고 헛 수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반쯤 죽어가는 이집트 사람을 발견합니다. 갈 길도 바쁜데, 밤낮 사흘동안 먹지 못한 이 사람을 먹을 것을 주면서 극진하게 돌봐 주어 목숨을 구해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사람은 아말렉 왕의 종이였는데 병이 들자 버리고 간 것입니다. 사막에서 죽도록 버려진 것입니다.
이 종의 안내로 아말렉의 거처를 알고, 아말렉은 승리의 축제로 마시고 춤추며 흥청망청 놀고 있을 때 다윗의 군대를 급습하여 빼앗 긴 모든 것을 다시 찾았습니다.
이 야기의 끝은 이것이 아니다. 모든 전리품을 가지고 시글락에 돌아오던 400명은 200명의 동료가 남아 있던 브솔 시내에 도착했습니다.
너무 탈진한 나머지 중도 낙오된 200명은, 400명의 동료가 아말렉과 싸우는 동안 편하게 시내 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겠죠.
200명은 기쁨으로 헤어진 가족과 다시 만났습니다. 그런데 400명 중에는 마음이 악한 사람, 인색한 사람들이 저런 나약한 200명에게는 아말렉에게서 찾아온 물건을 하나도 주어서는 안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승리는 했지만 두 부류에 갈등의 조짐이 보였습니다.
바로 이 때 다윗이 개입을 합니다.
“도중에 하차하여 시내에 남아있던 사람이나,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이나 모두 동등하므로 동등하게 나눠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을 모두 똑같이 나눠야 한다.”
상식적이고 공평과 정의를 요구했던 400명에게는 섭섭했을 지는 모르지만, 원래 그들은 내세울 만한 것이 전혀 없었던 사람들이였습니다. 200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벡에서 이스라엘과 싸우지 않는 것도,아말렉 추격 사건도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놀랍도록 관대한 은혜로 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도 서로를 관대하게 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 가는 것입니다. 조금 손해를 볼지라도 말이죠.
다윗은 모든 사건이 종결된 이후에 브솔 시내가를 거닐면서 이런 시를 묵상하였을 것입니다.
[시편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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