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포도원의 주인_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
1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른 아침/ 삼시(아홉 시)/ 육시(열두 시)/ 구시(세 시)/ 십일시(다섯 시)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는 것을 비유로 들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온 일꾼들은 아무도 써 주지 않은 자신을 고용한 것에 대하여 매우 감사했습니다. 하루 일당 1 데라리온을 받기로 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고용된 사람이나, 아홉시에, 열두시에, 세시에, 다섯시에 고용된 사람 모두 주인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포도원 주인은 너그럽고 후한 사람입니다.
주인이 후하다고 해서 일꾼들이 기분 나빠야 합니까?
이 이야기는 은혜와 하나님의 믿음으로 받는 구원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포도원 품꾼에 대한 비유는 먼저 신앙생활 한 자와 늦게 신앙생활 한 자에 대한 비교를 하거나 천국에서 받을 상급에 대하여 말씀하는 비유라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포도원 품꾼 비유는 신앙생활을 언제 했는가 하는 문제로 구원을 말하고자 하는 비유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천국 상급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기 위하여 주어지지 않았다.
예수님은 본 비유를 어떤 동기에 의해서 말씀하시게 되었는가?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물어왔을 때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시니까 청년은 근심하면서 갔다. 그때 베드로가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았으니 무슨 보상이 있겠습니까?”라고 예수님께 물었을 때 “먼저된 자로서 나중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19:30)고 하셨다. 그리고 ‘포도원 품꾼 비유’를 말씀하시게 된 것이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어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1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때에 분명 포도원 주인에게 비유의 초점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포도원 주인이 이른 아침에 품꾼을 구하러 나가서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일을 시켰다. 또 주인이 제 삼시(오전9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있는 사람이 있어 그들을 불러 일을 시켰다. 제 육시(낮12시), 제 구시(오후3시), 제 십일시(오후5시)에도 그렇게 하였다.
아마 그 당시에 이렇게까지 하여 일을 시키는 포도원 주인은 없었다. 그러기에 이 비유를 듣는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러면서 당연히 가지게 되는 호기심은 ‘과연 포도원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것이었다. 이때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온 사람에 대하여 주인이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고 말씀하셨다.
이쯤되었을 때에 유대인들은 포도원에 처음 들어온 품꾼은 분명히 몇 배의 품삯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고 말씀하신다. 아침 일찍 들어온 품꾼이 주인에게 따졌다. 그러나 주인은 약속한대로 주었기 때문에 자신은 결코 잘못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주인의 뜻이었다.
중요한 것은 3절의 “장터에서 놀고 섰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할 일없이 놀고 섰는 사람들이다. 주인이 불러주지 않으면 꼼짝없이 그날 하루는 일을 하지 못하고 굶어야 하는 신세이다. 주인은 은혜를 베풀었다. 그러나 품꾼들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은혜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다. 아니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된 성향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따지면 애초부터 놀던 자이기에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조차 주인의 은혜였다. 그러므로 천국의 질서나 법칙은 세상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굳이 세상의 법칙을 가지고 설명한다면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되는 것과 같이 완전히 반대로 되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이다.
일차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아직도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원리, 법칙을 잘 모르는 자들이었다. 이런 점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떤 자세로 주님을 따라야 하는가는 보여주신 것이다.
제자들은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유대적 관념과 종교관, 특히 유대종교가 가르치고 있는 보상주의, 공로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하시는 것이다. 즉 당대의 유대적 사상의 기준이나 관념을 가지고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는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판단하거나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천국의 모습은 비유에 나타난 포도원 주인이 은혜를 베푸는 모습과 같은 것이다. 십자가에 자신을 희생하도록 내어 주면서도 죄인을 용서하는 기도를 하시는 모습이 긍휼과 은혜의 모습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이고 하나님의 방법이며, 천국의 모습이다.
세상 질서 속에서 먼저 되고 이기려고 하는 기존의 관념, 기존의 잘못된 천국에 대한 이해가 깨어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역사를 바르게 알 수가 없게 된다. 인간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천국에 대한 관념은 지옥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고방식은 자기의 한 일을 가지고 앞뒤를 따지지만 하나님은 은혜를 아느냐 모르느냐를 가지고 앞뒤를 따지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포도원 주인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셨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16절).
이는 유대인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구원개념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타내시면서 그것은 곧 유대인만 선택된 자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나중 된 자, 즉 이방인에게로 구원이 이루어질 것을 의미하는 말씀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이방인이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 아니라 포도원 주인의 비유에서 나타내준 것처럼 주인의 은혜를 아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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