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9/29/2019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여러분 만일 사랑하는 사람이 병으로 죽어 잃게 되었을 떄에,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생각이 듭니까?
“아니 하나님은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왜 죽게 했습니까?” 라고 원망을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3km 정도 떨어진 베다니라는 마을에 3 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마르다, 나사로, 마리아입니다. 나사로는 마리아의 남동생, 마리아의 오빠인데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이미 알고 지냈습니다. 예수님이 예수살렘에 머물 때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베나니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극진하게 섬겨 왔기 때문에 예수님이 함께 있으면 병이 고쳐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38년된 병자도 고치고, 맹인의 눈도 뜨게 하신 분이 우리 남동생, 우리 오빠의 병을 고쳐주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피해서 또 다른 마을 베다니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거리는 하루길입니다.
두 자매들은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오시게 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보낸 다음에 나사로가 바로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고 해도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흘 후에 베다니에 도착했을 때는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여기 계셨더러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요” 라고 마르다가 말합니다. 어쩔 수가 없음에 안타까와 합니다. 병은 고칠 수 있으시지만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잖아요 이 뜻으로 말을 하였습니다.
많은 유대 사람들이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문하러 왔는데,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을 합니다. 나사로의 인생도 그가 죽었으니 끝난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도 두 자매도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나사로는 확실히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25, 26절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는 주여 내가 믿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습니다. 라고 말을 합니다.
이렇게 말을 하지만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활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를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들은 나사로처럼 반드시 부활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확실하게 죽었듯이 확실하게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이 말의 의미는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분이고 영생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육체적인 죽음을 겪는다고 할지라도 영생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는 표적을 보고 두 종류의 반응이 일어 났습니다.
하나는 유대 지도자들은 베다니에서 놀라운 표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라는 자를 살려 두어서는 안된다고 라고 결의하고 더욱 더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현실적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없으면 반대를 합니다. 예수가 죽어서 우리가 망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사로의 부활 사건 이후로 산혜드린 공회는 예수님에 대하여 사형선고를 내립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임을 믿었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 되는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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