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요한복음 5:1~18 (네가 낫고자 하느냐)

Paul KO 2020. 11. 18. 22:08

제목: 네가 낫고자 하느냐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 유대인들이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2.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지난 주 설교에서는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가는 도중에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한 왕의 신하가 예수님이 갈릴리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가나에 도착하니 가버나움에서 왕의 신하가 와서 죽을 병에 걸린 아들 좀 고쳐 주세요라고 합니다. 가버나움에서 가나까지 거리는 약 30km인데 급히 달려 왔겠죠.  돈과 권력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조치를 다 해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희망이 없다 간절한 마음으로 달려 왔을 것입니다.

집에 가보면 네 아들이 살았을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다시 밤길을 걸어 다음 날 새벽에 도중에 아들이 살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감사한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온 집안이 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어떤 명절 때 (아마 오순절)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옵니다.

예루살렘에 베데스타라는 못이 있습니다. 양을 매매하는 시장 가까이에 있는 못입니다. 양이 들어가는 문을 양문이라고 부릅니다. 이 양문 옆에 베데스타(은혜의 집)이 있습니다.예루살렘 성내의 양을 매매하는 시장 가까이에 있는 못

 

사람들은 연못에 물의 움직임이 있으면 먼저 들어가면 어떤 병이라도 낫는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병자들이 이곳에 머물곤 하였습니다. 이 곳에는 병약한 사람, 앞 못 보는 사람, 걷지 못하는 사람, 다리를 저는 사람 등 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천사가 가끔 내려와 물이 움직일 때 먼저 들어 오는 병자를 고쳐 준다는  내용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시대에 살고 있다면 그 사실을 믿겠습니까?

저는 안 믿겠습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냥 어쩌다 우연히 낫는 것을 천사의 행위로 알고 사람들은 전설처럼 믿어 왔던 것입니다.

천사가 낫게 해준다면 왜 한 사람만 고쳐 줍니까? 모두 다 고쳐 줘야죠. 먼저 연 못에 들어 가기 위하여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할 까요? 생각을 해보세요. 난장판이 되었을 것입니다. 천사가 그러면 안되죠. 천사가 할 일입니까?

사실이 아닌 것을 전설로 믿고 희망이 없이 기다리는 행위입니다. 우연히 치료된 것을 천사의 행위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데스타 연못에서 38년된 병자에게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병자라면 어떤 대답을 하겠습니까?

그럼 그는 !!”라고 대답했어야 했습니다. 나의 낫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보였어야 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주기만 했어도 나는 낫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의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낫고자하는 열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이 불쌍한 사람을 치료해 줍니다. 믿음이 없음에도 은혜로 치료를 받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너의 병을 고친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그는 모른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는 우리라면 38년된 사람이 고침을 받았다고 하면 축하를 해 주어야 하는 데, 정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8년된 고침 받는 사람에게 충고를 합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치료를 받았으면 당연히 감사를 표현했어야 했습니다. 육체는 치료되었지만 영혼을 치료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병자는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왜 고자질을 했을까요? 이 병자는 유대이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귀한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고자질을 했습니다. 다른 성경학자들은 이 병자는 완악자, 나쁜놈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앞으로 나올 요한복음 9장에서는 실로암에서의 소경은 유대인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드러 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훈련소에서 실로암” 이라는 복음송을 부르지 "베데스타"라는 복송은 없어 부르지 않습니다.

요한 복음 4장에서 왕의 신하의 믿음에 대해서는 칭찬을 하지만 베데스타에서의 병자를 칭찬하지 않습니다.

 

베데스타의 병자는 육체의 병을 치료되었지만 영혼의 병은 치료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용감히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드러내고 신앙을 지킬 때 하나님은 반드시 보상을 해 주십니다.

 

하나님, 오늘 나의 병이 낫기를 원합니다. 나의 아픔, 나의 상처가 치료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죄책감도 낫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저에게 찾아 오셔서 저를 깨끗하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