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미국 미주리(Missouri)주 어느 시골마을에 있는 작은 미용실에 그날따라 많은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손님들마다 하나같이 삭발을 요청했습니다. 미용사는 사연이 궁금했습니다. 이들은 그 마을의 50여명이 출석하는 어느 작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이었습니다.
미용사는 처음엔 이상한 ‘광신도’들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특별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 교인들로부터 늘 사랑받던 여자 중학생이 있었는데 암수술을 받고 항암치료까지 마쳤지만 교회를 나오지 않자 목사님과 몇몇 성도가 심방을 갔다고 합니다. 머리를 짧게 밀어 삭발을 해서 부끄러워서 외출을 못 한다는 소녀의 사정을 듣게 된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교회에 돌아와 성도들과 의논한 결과 끝에 교인들이 모두 삭발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사연을 듣고 감동한 미용사는 방송국에 연락을 했습니다. 여학생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주자고 의견을 모으고 이와 같은 작은 교회가 계획하고 있는 작은 사랑의 이벤트의 내용이 그 소녀의 엄마에게도 전달이 되었습니다. 주일날, 그 소녀의 엄마는 소녀를 간곡히 설득하여 모자를 씌워 교회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방송국에서 취재차 나온 한 기자가 미리 교회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교회에 나온 그 여학생은 교회 문을 연 순간, 50여명의 까까머리 교인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소녀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모자를 벗어야 되나 하고 잠시 망설이던 소녀는 결국 모자를 벗었습니다. 중계하던 기자가 이 광경을 보고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교회를 나간다면 이런 교회에 나가고 싶습니다.” 방송을 보던 많은 사람들도 감동의 눈물을 닦았습니다.
미주리주의 이 작은 교회의 모습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불신자인 리포터가 “교회에 나간다면 이런 교회에 나가고 싶다”라고 말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감동을 받습니까?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살아갈 때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늘나라의 모든 영광을 다 내려놓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 그리고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으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다가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처럼 세상의 탐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고 서로를 돕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럴 때에 교회가 살 뿐 아니라, “나도 저 교회에 가고 싶다”라는 감동이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감동의 꽃을 피웁니다. 감동은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사랑과 감동은 바위 같은 마음도 녹이는 활활 타는 용광로가 되고 빙산 같은 마음도 녹이는 따스한 봄바람이 됩니다. 우리가 출석하는 교회에 이런 사랑과 감동이 그립습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마음입니다. 우리 교회를 이런 교회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모두가 감동하는 사랑이 있는 교회로 만들기 위해 내가 먼저 머리를 깎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진실한 기독교인의 증거는 사랑과 용서입니다. 생활 중에서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다음은 테레사(Mother Teresa)수녀의 말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어느 곳에 데려다 놓든 그곳이 바로 당신이 있어야 할 곳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에 얼마나 많은 사랑을 쏟고 있느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위대한 성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곳에서 사랑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사랑이 없는 율법의 행위의 예: 간음한 여인의 예
율법의 가르침이 예수님이 가르치는 의미와 랍비들이 가르치는 의미가 달라서 충돌이 났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거짓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선동하고 폭도를 일으킨다고 비난을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웃의 범위를 자기 동족만을 포함시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웃의 범위는 모든 사람, 누구나입니다. 심지어 원수까지 이웃에 포함됩니다.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사랑합니다. 자신을 돌보기 위하여 많은 생각도 하고 많은 수고를 합니다. 사랑하라는 계명은 다른 사람에 대한 적극적인 돌봄과 관심과 수고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인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왔습니다. 등장인물…이들은 율법 전문가들입니다.
여러분도 이 현장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시다.
4,5 절에서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이러한 여자는 돌로 치라고 했는데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하고 시험을 합니다.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했습니다.
해당하는 율법을 보겠습니다.
신 22:22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여러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않았습니까?
1) 이 현장에 범죄한 남자가 없습니다. 이들은 현장에서 들통이 났기 때문에 남자도 잡혀 왔어야 했습니다.
잡히지 않았나요? 도망쳤습니까? 누군가 보내 준 것 같습니다. 빽이 있는 사람이든지 돈이 많은 사람이든지. 유명한 정치인이거나 정치인과 관련된 사람들이거나..
2) 공식적으로 고소하려고 하면 성전으로 끌고 올 필요가 없었습니다. 공회로 갔어야 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꾸민 사건의 구성에 헛 점이 많이 보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리기 위하여 어떤 여자를 데리고 와야 했습니다. 이 여자에게도 어떤 사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3) 분명한 것은 이 여자가 현장에서 간음을 하다가 붙잡힌 것입니다.
이제 이 여자는 많은 군중 앞에서 자기 죄가 다 드러났기 때문에 수치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얼굴 들고 살 수 있나? 그리고 돌 맞아 죽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드러날 때 부끄러울 수 있죠?
4) 이런 상황 가운데 예수님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려서 고발을 하려 하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여자를 돌로 치라고 대답하면 그들은 로마법 위반자로 고소할 것입니다. 그 당시 형 집행은 로마 총독의 책임하에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사랑과 용서인데 가르침에 모순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돌로 치지 말라고 대답하면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산헤드린 공회에서 유죄 선고를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하나씩 하나씩 물러 나갔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이 진행하는 동안에 모두가 여자도, 서기관도, 바리새인들도, 군중들도 자신의 가식된 모습을 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에 우리의 일주일의 생활을 돌아 보는 시간이 되고 양심을 찾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신 말을 듣고 여자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예수님의 온화한 사랑과 용서하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죄로부터 해방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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